자원봉사신청

자원봉사 신청 & 절차

"자원봉사는 삶의 자양분입니다."

민간주도 전국 최대 단일 자원 봉사단 한국 자원봉사관리협회입니다.

열정 , 참여 , 보람 , 행복 , 사랑 , 축복 , 나눔! 이 모든 말들이 자원봉사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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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nnie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03-18 02:46

이번 창녕출장샵 짝꿍의 출장은 김해와 가까운 곳이다보니! 일 끝나고 바로 올라가기 위해! 저도 일하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뜻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합니다. 그래서 향한 곳! 국립김해박물관입니다.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 국립김해박물관위치 경남 김해시 가야의길 190전화 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입장료 무료*주차가능​*전시해설 화/수 오전 11시 목/금 11시, 14시 토요일 11시 일요일 14시웹사이트는 요기!금관가야의 중심지로 가야의 건국신화가 깃든 구지봉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김해박물관은 1998년 7월 29일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 전시하기 위한 고고학 중심의 박물관으로 개관한 우리나라 대표 “가야사 특화 박물관”입니다.국립김해박물관은 웹사이트 이외에도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통하고 있었습니다.​국립김해박물관의 인스타그램도 가 보세요 ^^팔로워 6,660명, 팔로잉 568명, 게시물 1,332개 - 국립김해박물관(@gimhaenm)님의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보기​국립김해박물관 -가는길&외관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했습니다.부산김해선 경전철을 타고 박물관역에서 내렸어요 ^^ 그 앞쪽에는 해반천이 흐르고 있고, 몇몇 분들이 산책중이셨습니다. 국립김해박물관 가는 길에 눈에 띄었던 [김해시민의종]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54위치 경남 김해시 가야의길154밤에는 조명이 들어와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곳은, '평안과 번영, 가야왕도 김해시민들의 염원을 담은'공간입니다. ​종각의 형태는 가야 문화의 전통을 계승 발전하는 의미로 가야 토기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하여 형상화 했다고 하는군요. 6기둥은 6가야를 의미하고 있다고 합니다. 안에는 김해시민들의 행복과 히망을 담은 총24억 4천여만원의 시민 성금을 기탁한 분들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흐음... 그렇게 큰 돈을.. 들여서 만들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저는 김해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살짝 의아했지만, 이유가 있었겠죠? 국립김해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보였던 안내.가야사 누리길 안내도는- 이 근처를 둘러볼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근처에 생각보다 무척 많은 볼거리들이 있더라고요 ^^ 문화 유적도! 박물관도 고루고루 있어 보는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 여기는 국립김해박물관 건너편의 모습입니다.대표적인 유물인 청동거울등이 벽에 새겨진 것을 보고 제대로인데? 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짠! 거대한 국립김해박물관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 이 날 오전 11시 전시해설이 있음을 알았는데- 제가 시간계산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11시 쪼끔 넘어서 도착해버렸지 뭐예요.. ㅠ.ㅠ 어찌나 속상하던지...그래도 볼거리가 워낙 많은 곳이라! 혼자 다니면서도 열심히 꼼꼼하게 둘러보았습니다.​1998년 건립된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문화권의 유물을 집대성하여 시대별 문화와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곳입니다. ​건물 전체를 검은 벽돌로 외장한 것은! 철광석과 숯의 이미지라고 하더라고요!! 이는 철의 왕국이었떤 가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니 의미가 남다릅니다. ​국립김해박물관 -가야 이전 사람들의 삶입구로 들어가 봅니다. 밝고 널찍한 로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2024년 1월 22일, 상설전시를 전면리모델링하여 새롭게 ;를 오픈합니다.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7개 지역(김해, 함안, 고성, 합천, 창녕, 고령, 남원)의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니!! 정말 멋지더라고요.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사계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펼쳐지는 공간 앞에, 아마도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을 배 한척이 눈에 들어옵니다. 창녕출장샵 ​이곳은 선사시대의 삶을 보여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신석기 시대에 이용되었을 배와 노는 창녕에서 발견된 신석기 유물로 약 7,700여년 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배의 경우 파내기 쉽도록 불에 그을린 흔적이 군데군데 있을정도라하니- 그 시대 사람들의 지혜가 눈에 띕니다. ​현재 출토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일본 조몬시대보다 시기적으로 앞설정도라고 하네요!!! 그리고 이 노의 경우는 껍질을 제거한 줄참나무를 결에 따라 다듬어 만든 날렵한 모양!! 노를 만들어 배를 저으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까지 생활속에서 터득했겠지요. 구석기 시대의 삶은 비교적 심플했지만, 생존과 관련된 문제는 늘 있어왔습니다. ​날씨로부터 자신을 지켜야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동해야 했습니다. 배는 그런 삶의 투쟁의 결과였겠지요. 가장 오래된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돌로 만든 도구들. 자르거나 긁어내거나 빻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용도에 맞는 뗀석기를 제작해 이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단순한 형태에서 점점 정교해져 가는 모습을 순서대로 보실 수 있습니다.​선사시대와 관련된 유물들을 보긴했으나- 여기처럼 정교할 수는 없겠다 싶었어요.​당시의 생활상과 패총을 통해 알아보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도 확인 가능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반도의 자연환경도 서서히변해가 따뜻한 기후가 되어갔고, 그에따라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기 시작합니다. 그에따라 낚시도 본격 시작되고 사냥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그와 관련된 낚싯바늘과 작살, 그물 등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토기들이 등장해 먹거리를 보관하거나 운반하는데 사용되지요. ​진흙을 구우면 단단하게 변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 우리 역사책에 보면 항상 나오는 민무늬토기라던가 빗살무늬 토기등도 여기서 다 보실 수 있습니다. 한쪽 벽에는 구석기시대부터 가야까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을 기준으로 문화사 연표가 제작되어 있었는데요- 구석기 시대부터 선사시대를 거쳐 금관가야가 멸망하고 신라문화가 확산되는 그때까지- 토기를 중심으로 그 발전사를 볼 수 있는 것도 독특했어요. 그리고 여기도 역시! 이렇게 촉각으로 유물들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꽤 유익한 공간!소개하고 싶은 유물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제가 보고 놀랐던 것들만!! 올리기로 합니다- 그럼에도 왜이리많어.. 그정도로 볼거리가 무척 풍성했던 곳이었어요!아까 촉각놀이를 할 수 있도록 재현해 놓은 그 칼의 원본입니다. ​간돌칼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 많이 확인되는 것으로 사실.. 딱 봐도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은 모습이긴한데- 뭔가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요?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정교한 솜씨입니다. 칼 모양새를 돌을 갈아 이렇게까지 만들어내다니요!!! 이외에도 진주와 김해에서 발견된 상태가 몹시 좋은 청동기시대의 붉은 간토기도 보실 수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본격화된 벼농사! 벼는 봄에 심어서 가을에 수확할 때까지 시간적으로도 오래걸리지만 손이 꽤 많이 가는 과정이지요. ​당시 아마도 벼를 긁어냈을 때 사용되었을 반달돌칼이라던가 다양한 도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중간의 구멍에는 줄을 끼우거나해서 손에 착 잡히게 만드는 용도였겠지요? 그리고 섬세하게 갈아낸 돌화살촉들의 창녕출장샵 모습은 지금봐도 놀랍습니다. 어쩜 저렇게 뾰족하고 정교하게 만들어냈을까요!!!! 청동기시대라고 모든 도구가 갑자기 청동기로 바뀌지는 않았고 여전히 돌로 만든 도구들이 이용되었습니다. 돌창이나 그물추 등도 만들어서 이용했고, 옥돌을 다듬어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는 등, 미적인 면에 있어서도 신경쓰기 시작하는 시대가 열리죠.그리고 토기들의 형태도 점점 다양해졌습니다. 청동기시대의 경우 민무늬토기가 많습니다. 아예 완전 아무런 무늬가 없다는 뜻은 아니고, 좁은 면적에 무늬가 있기도 하다는군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른 특징을 보이기에 지역적 특색을 살피기에도 좋은 유물이죠. 진열해 놓은 방식이 정말 멋졌습니다!​이것은 붉은 간토기와 가지무늬 토기인데요- 둘 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특별히 많은 공을들여 만든 토기로 붉은 안료를 개어 발라 문질러 윤을 내거나 하는 방식으로 귀한 그릇이라고 합니다. ​그래서그런지 모양새도 깔끔하고 색이 살짝 들어있었어요. 이어지는 고인돌에서 발견된 농경사회의 기념물이랄까요!!!​농경사회는 물을 대고 씨를 뿌린뒤 수확하기까지! 그 모든일은 혼자하는 것이 아닌 마을 전체의 단결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갈등, 그리고 이를 조정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생겨남과 동시에 계급도 자연히 발생하게 되었죠. ​고인돌 안에서는 실용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일부 과장된 크기와 형태의 돌칼과 돌화살촉이 발견되는 점에서 이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음을 짐작하게 합니다.​간돌칼들은- 기념품같은 느낌. 무게도 꽤 나가지 않을까 싶었어요. 청동검이 그려진 바위!! 자칫 그냥 버려졌을 수도 있는데 밀양에서 발견되어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쪽에 푸른빛이 나는 청동검들!!! 무려 이게 원본이라는거죠!!! 이것들은 한국식동검으로 손잡이를 함께 제작하는 요령식 동검과 달리ㅏ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조립하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모양도 좀더 실용적이죠. ​국립김해박물관- 가야의 여명이제 본격적으로 청동기시대 막바지에 가야가 시작될 무렵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 시기는 철기가 사용됩니다. ​광석에서 철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누가 알아낸 것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정말 오랜세월 땅속 깊은곳에 있었을 유물들은 이미 많이 변했지만- 그 모양만큼은 유지하고 있었습니다.​아래쪽의 철기는 대체 어떤 용도였을까 궁금합니다. 고사리무늬라는데- 제사의 용도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까요? 주변 지역과의 교류도 점차 활발해져 새로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때 덧띠토기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는 민무늬 토기의 아가리에 점토띠를 붙여 만든 것으로- 그 덧붙인 점토의 자른 면이 원형에서 삼각형으로 변합니다. ​거기에 검은간토기, 굽다리접시처럼 다양한 형태의 토기들이 등장하죠. 쇼룸처럼 정돈되어 진열되어있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들! 형태도 더 다양합니다. ​이는 와질토기라하여 영남지방에 등장한 것인데요- 질감이 기와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주로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로 아마도 제사 그릇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죠. 그 형태가 확실히 다이나믹 해 졌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거기다! 옻칠을 발견하게 된 사람들!!옻은 장식성 뿐만아니라 기능성까지 높여줍니다. 예로부터 옻이 유명한 곳은 강원도 원주!라고 원주시립박물관에서 듣긴했으나- 그 이외의 지역에서도 광범이하게 이용되었죠. ​습기, 열, 부패에 강하게 창녕출장샵 만들어주는 옻칠. 하지만 그 수액을 채취해서 입히기까지 그 정성이 말도 못하기에 매우 귀한 물건중 하나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유력자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무덤으로, 창원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이 널무덤의 주인공은 함께 묻은 것들의 질과 양이 당시 최상급이었기 때문에 그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와, 이런 형태의 관이라니... 살면서 처음 봤어요!!! 예전에 이랬구나!!! 해상교역도 활발해지면서 김해만을 중심으로 국제교류도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 청동 세발솥이라던가 청동거울, 그리고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들여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야요이토기와 청동 투겁창 등!!! ​오래전부터 그 바다를 건너 사람들이 오갔다는 것이 저는 무척 신기하더라고요 ^^ 청동거울이 사이즈별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왼편에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투겁창도 보였어요. 그 형태가 정말 독특하면서 정교한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내가.. 옛 사람들을 그동안 너무 무시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 당시에는 검과 거울, 목걸이같은 물품은 매우 귀한 것들이라 지도자와 같은 높은 사람들만이 이용했다고 하죠. 그 형태와 정교함도 점점 더해집니다. 그 당시에 만들어졌다는 이 수정목걸이! 와.. 저 사이즈보세요! 디자인이 결코 요즘 것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것은 보물로 지정되어있다고 하니! 그 가치가 남다르죠. ​국립김해박물관 - 가야의 발전이제 본격적으로 가야의 발전을 한번 논해보기로 합니다. 변한시대의 여러 작은 나라에서 출발한 가야는 특히 철기생산능력이 발달한 나라로 바닷길 중개교역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3세기 후반 무렵, 지배계층의 무덤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4세기는 금관가야의 눈부신 성장, 5세기 이후에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아라가야, 소가야가 함께 발전한 것을 볼 수 있죠. ​가야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남쪽에 있던 12개의 소국들이 세운 연맹국입니다.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상주의 고령가야! 그 이후 562년에 신라에 흡수되었지요.​가야사람들은 꽤 손재주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남긴 유물들의섬세함은- 지금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거든요. 그런 예술성이 신라를 통해 이어지는 것만봐도 알 수 있죠. ​(짧게 써야하는데.. 계속 길어진다..)이 당시에는 조금 더 단단한 토기들이 등장합니다! 드디어 요즘처럼 밀폐된 굴가마에서 천도가 넘는 온도로 구운 토기가 등장하지요. ​전시된 유물들을 보아도- 이전 시대의 토기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겁니다.또한 당시에는 말도 소중한 재산이었기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는데요, 이 말을 어떤식으로 꾸미느냐-에 따라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다라고하니.. 요즘 명품차 같은 그런 느낌이었을까요? ​실용적인 발걸이와 안장등은 4세기 대 금관가야 지배층 무덤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말에게 꾸며졌을 다양한 아이템들이 대단하더라고요. 말머리 가리개(말 머리 앞쪽의 철제 제품)는 말이 답답해하지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가야는 무역에도 능했는데요- 그와 관련된 유물들이 낙동강 하구와 연안일대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들여온 장식품들은 정말! 지금 착용해도 예쁠 것 같지 않나요!!! 곡올으로 창녕출장샵 만든 목걸이등은 동남아 바닷가 여행시 저를 돋보이게 해줄것 같다며.. 괜히 헛소리도 해 봅니다. 꽤 큰 사이즈의 뚜껑이 있는 긴목 항아리!!! 그리고 바리모양 그릇받침도 온전한 모습으로 한쪽에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무늬를 넣은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렇게 큰 그릇이라니! 그리고 그 옆에는! 5세기경 제작된 용.봉황장식 고리자루 큰칼과 고리자루 큰칼이!!! 긴 세월을 거쳐 생존해 있었습니다!!! 이 둘도 우리나라 보물이라는 점!!!그리고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 ;​얇은 철판 가장자리에 여러개의 가시모양 미늘을 달아놓아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늘이 뭔디~ 갑옷에 단 비늘 모양의 조각이라고 하네요 ^^ ​아래는 자루에 꽂을 수 있게 되어있다는데 무기...로 사용이가능했을까요? 아마도 의례용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을까요? 아라가야의 경우 말갑옷, 고리자루 큰칼, 미늘쇠 등! 많은 철제제품들이 확인됩니다. ​또한 대가야는 가야세력 중 유일하게 토기 뿐만아니라 독자적 양식의 무기와 공예품도 갖추었다고하니- 위세도 남달랐겠지요. 신기한 물건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국립김해박물관-신라세력의 확산이제 가야에서 신라로 넘어가보기로 합니다.​400년, 고구려와 신라 연합군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은 금관가야. 이후 가야 여러 나라들이 조금씩 흡수되기 시작해, 532년에는 금관가야의 왕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하고, 562년 대가야가 정복됨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그 문화에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창녕지역은 예로부터 낙동강 문화 교류의 중심지이다보니 가야로 진출하려던 신라 세력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은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신라- 하면 떠올릴만한 예쁜세공품들이 가야에서 이어진 것이 많더라고요. 이런 액세서리들은 지금 착용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의 디자인과 퀄리티였습니다. 가야에서 신라로 이어지는 토기들. 가야의 경우 돌덧널무덤이었는데 이 시기에는 신라식의 돌방무덤으로 바뀌어가기시작하며- 전체적인 모습이 신라화되어갑니다. 1층 관람을 끝내고 2층으로 올라가 봅시다!왼편의 저 알록달록한 LED벽이 있는 공간은 엘리베이터입니다. 저는 공간이 예뻐서 비탈진 길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어요 ^^ ​국립김해박물관-가야의 멋을 담다2층 시작에서부터 저를 압도하는 금동관! 5세기경 제작되어 부산에서 출토된 이 금동관은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가야의 금동관은 신라의 화려한 금관과 달리 단순한 나뭇가지 모양입니다. 이 디자인은 신라의 초기 관 형태와 비슷하죠.​그러나 신라처럼 금만으로 만든 것은 없고 구리에 얇게 금을 씌운 금동관만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도금일까요. ​지나치게 반짝이기보다 은은한 멋을 보여주었습니다. 화려한 장신구로 아름다움과 지위도 나타냈던 시절. 당시의 장신구들이 이렇게! 정말 쇼룸처럼! 쇼케이스처럼 정돈되어 진열되어 있었어요- 저 저 귀걸이 하나만 해봐도 될까요? 물어보고 싶을정도. 금귀걸이 뿐만아니라 목걸이에 팔찌에- 소재도 다양했습니다. 디자인이 정말! 요즘 해도 손색이 없을 모양새라- 자꾸 눈이 가더라고요~ 나도 여자는 여자인가벼~ 이러며..;;;;​그리고 안쪽에서는 가야의 미라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빨려들었습니다. 왜.. 사진이 없징? ​국립김해박물관-가야 사람들의 삶가야사람들은 질박하고 검소했다고 전해집니다. 주로 움집이나 초가집에서 살았다고 알려졌지만 2층으로 만든 다락집에 살기도 했다지요. ​당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살았을지 한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집모양의 토기가 보입니다.가야의 집은 창녕출장샵 주로 구덩이를 파서 만든 움집과 다락집이었다는데요, 이는 집 터와 더불어 이런 토기들의 모습을 참고할 수 있죠. ​높은 기둥을 세워 만든 이층집인 다락집은 짐승과 습기로부터 곡무을 보호하는 창고이기도 하고 지배자의 권위를 보여주기도 한답니다. ​창원에서 나온 이 토기는 당시의 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제 눈에는 귀엽더라고요~ 저 커다란 앞쪽의 구멍을 통해 어쩐지 김이 뿌뿌~ 올라올 것 같다!며 혼자 생각했습니다 ^^;;;고고학 조사가 이어지면서 도성과 궁성등의 모습도 밝혀지고 있는데요- 봉황 토성은 금관가야의 도성과 궁성 구조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합니다. ​또한 대가야는 고령읍 서쪽 가장자리 주산, 그 아래로는 대가야 왕들이 묻힌 지산동 고분군이 자리하는 등!!!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것들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소박했던 삶을 보여주는 각종 농기구들. 한반도 북부보다 늦은 철기문화로 인해 쇠로 만든 농기구 사용도 비교적 늦었습니다. 그러나! 풍부한 철과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중요한 농기구를 쇠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일. ​당시의 농기구들과 어떤 식의 쓰임새였을지 짐작하여 복원하는 등-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갈퀴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들을 통해 당시 어떤식으로 밭이나 논을 갈았을지 대충 짐작이 됩니다. 이런 유적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이곳으로 옮겨 온 것도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외에도 어업에 사용되었을 것 같은 낚싯바늘등도 여럿 있었습니다. 2005년 발굴된 김해 회현리 조개더미는 무려 100개층으로 구분된다는군요!! 총 4단계의 시기로 구분되는데 맨 아래인 100층에서는 기원 전후 무렵의 토기가, 맨 위층에서는 4세기 무렵의 단단한 토기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즉! 약 400여년동안 만들어졌을 이 조개더미 속에서 장신구, 도구 등! 그 시대의 모습을 짐적할만한 것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와... 국립김해박물관-가야토기요기 새 모양의 토기도 눈에 들어옵니다!이는 김해시 주촌면 망덕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관가야의 오리토기들인데요, 김해의 캐릭터인 '토더기'는 요기서 탄생했다고 하더라고요 ^^ 현재페이지 위치: 홈 | 김해소개 하위메뉴열기 | 김해개요 하위메뉴열기 | 김해의상징 하위메뉴열기 캐릭터 네이버 블로그 담기 페이스북 담기 트위터 담기 카카오톡 담기 PDF내려받기 링크 공유 (링크 주소 복사) 기본형 캐릭터 토더기&quot베이직 AI 다운로드 의미 김해시 주촌면 망덕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오리모양 토기를 모티브로, 흙토(土)와 오리를 뜻하는 영단어 Duck을 한글로 표기한 '더기'를 합성해 '토더기'로 작명, 김해의 역사 유물을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로 상징화함. 예로부터 오리는 땅, 물과 하늘을 오가며 현세와 ...이건 어쩐지 그 자체가 예술작품같아서- 한장 찍어보았어요. 아라가야 왕들이 묻힌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 나온 항아리라고 합니다.​형태와 빛이 마치 백자같은 느낌이었는데 또 이렇게 따로 두어 그 느낌을 더 우아하게 보이게 해 두었습니다. 밀폐된 굴에서 만들어진 가야토기. ​가마는 점토와 연료, 물을 구하기 쉽고 토기를 실어 나르기 쉬운 곳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릇 창녕출장샵 매장에서 진열된 제품을 보는 느낌이지 않으신가요 ^^ 전시를 예쁘게 구성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거!!! 제 눈길을 사로잡은 이 잔들!!이름하여 방울잔들입니다!!!​잔 아랫부분에 흙으로 만든 방울 알이 들어있어 흔들 때마다 청아한 소리가 들리는 잔이래요!!! 음료를 담아마시는 기능 뿐만아니라 귀까지 즐거운! 아마도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쓰는 방울처럼 티없이 맑고 깨끗한 소리로 귀신을 쫓을 때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대요. 이런 잔은 지금 만들어도 좋겠다! 싶었어요~!!! 있는데 저만 모르는 것일수도 있지만요 ^^​어쩜 안에 방울을 넣을 생각을! 당시에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지는 다양한 형태와 색의 토기들!!! 교류시 필수였을 문자. 가야유물에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 종종 있다고 하는군요 ^^ 한자..역사.. 대단해..자세히 보시면 글자대로 패인 흔적이 있습니다.형태와 무늬도 다양했던 가야시대의 다양한 토기들.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정말 다양합니다! 신기했어요. ​특히나 잔 모양이 다양한데요, 손잡이가 붙어있는 것들도 보였습니다. 정말 지금 판매한다고 해도 잘 팔릴 것 같은 디자인들!​손으로 일일이 빚었기 때문에 동일한 생김새라도 완전 같지는 않은 것도 매력입니다. 가야는 위에서 6개의 연합국가라 말씀드렸는데요- 그 특성이 잘 나타나는 것중 하나가 바로 토기입니다. 지역별로 그 개성이 뚜렷하다 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그릇받침, 뚜껑접시 등은 여러 가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토기입니다. ​계속 진열을 넘 잘해놨다며.. 감동의 연속. 상형토기는 인물이나 동물 또는 물건의 모습을 본떠 만든 토기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무덤이나 의례장소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일상보다는 죽은이의 안식과 사후세계에 대한 바람을 담은 의례용으로 보여진다 합니다. 뿔모양 잔을 보고 바이킹입니까? 하고 괜히 한번 생각해 봅니다. 어허..무덤에서 함께 출토된 다양한 물건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이 토기라고 하는데요- 아마도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여 제사상에 올리는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옛부터 사후세계에 관한 관심이 많았군요!!!국립김해박물관-철의왕국, 가야청동보다 단단하고 오래 사용 가능해 더욱 실용적인 철. 이는 가야 성장의 기반이기도 했습니다.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생산한 철은 화폐처럼 쓰였으며, 낙랑과 대방, 왜에 수출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나 가야의 쇠를 만드는 방법은 앞선 기술이었기에 전문 장인이 은밀하게 전수했다고 합니다. 광석에서 순수한 쇠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복잡한 전문지식+능숙한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 철의 국가였던 가야. 전투할 때 몸을 보호해주는 갑옷들도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세월의 흔적속에 형태만을 보존한 철갑옷. 가죽이나 나무로 만들던 것이 어느새 철로 변했습니다. ​실제 전투에서 불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서 잘 맞으면서 활동성을 줄 수 있는 갑옷을 만드는 기술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요?​현재 남아있는 갑옷의 무게도 4~5kg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녹이 슬어 이정도이니- 아마도 이전에는 더 무거웠겠죠??? ​갑옷의 형태는 서양과도 어느정도 닮아있더라고요. 각기 발전했어도 기능적인 면을 창녕출장샵 생각하면 나올 수 있는 최상의 디자인이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말또한 전사로 취급되던 시절이라 말에 두르는 다양한 말갖춤도 진열되어 있었어요. ​말을 화려하게 꾸미는 일은 탄 사람의 신분을 과시하거나 위엄을 드러내는 수단. 위에서도 한번 말씀드렸지만.. 고급승용차의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삼국시대 이래 전쟁에 자주 이용되었던 말. ​가야 유적에서 보이는 말의 갑옷과 투구는 당시 철기를 만드는 기술로는 가야가 최고였음을 알려줌과 동시에 주변 나라들과 전쟁을 했었음을 보여줍니다. ​왼쪽 사진 아래쪽은 말 갑옷이 있었는데요- 말은 갑옷도 입어 갑옷입은 사람도 태워.. 얼마나 힘들었을까...​이외에도 다양한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국립김해박물관- 해상왕국, 가야가야의 고분군에서는 중국, 북방의 유목민, 왜, 신라, 백제, 고구려등과 교류한 여러 흔적들이 남아있던 것을 옮겨 왔습니다. 주변나라들과도 외교적으로 활발한 관계를 맺었던 가야!!! ​소용돌이 모양의 것은 청동방패 꾸미개라고 하더라고요. 표창인줄 알았다... 이제 무기에 꾸미기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던 것!당시 동아시아의 바다 이곳저곳을 누렷을 배의 모형들. ​지금까지 가야지역 무덤등에서 배모양 토기가 7개가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왼쪽의 것은 배 형태가 좀더 명확한데요- 중간에 돛으로 보이는 네모난 판이 있고, 노를 거는 곳이 없는 것으로 보아 큰 배를 본뜬 것은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바다를 누렸던 것으로 추정된는 가야 배의 조각입니다. ​무늬와 형태 등을 보아 아마도 뱃머리나 배 끝의 상판 상단부로 보이는 이 조각은 18개월동안 보존 처리를 한 결과! 몸채는 녹나무(혹은 생달나무), 쐐기는 삼나무, 노는 상수리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그냥 나무조각이네! 하고 버렸다면!! 큰일났을 소중한 자료였어요!!! 현재 뮤지엄샵은 운영되고있지 않다고 합니다. 아쉬웠어요. 실제 유물들을 복제해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좋겠다 싶었는데.. 청동거울이라던가, 악세사리등은 재현만해도 예쁠텐데..하는 마음이었습니다.​하지만 이용객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고의 위험이라던가 생산단가의 문제가 발생하겠지요.. 속상하다.. ㅠ.ㅠ​그래도 이 공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에는 다양한 역사와 관련된 책자들이 있어 편히 읽으실 수 있습니다. 콘센트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이 앞쪽에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걷는 길마저도 공간을 잘 이용했습니다.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보기 좋았어요! 현재 박물관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 전시되었을법한 유물들도 보였습니다. ​국립은 역시 다르구나! 싶었던 곳. 이렇게 관리가 잘 되고 있는데 무료라는 것이 또 감동입니다. 이번에는 해설은 듣지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들어보고싶었어요. ​오늘도 즐거운 여행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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